멀티 펩타이드 화장품, 펩타이드 종류가 많을수록 좋을까?
세럼 한 병에 펩타이드 5종, 9종, 12종. 최근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보다 보면 마치 펩타이드 종류가 많을수록 더 강력한 제품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화장품 속 펩타이드는 숫자로만 비교하기 어려운 성분입니다. 펩타이드는 종류에 따라 구조와 연구된 기능이 다르며, 여러 종류가 들어갔다고 해서 주름 개선 효과가 그 개수에 비례해 커진다는 임상 근거는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몇 종인가’보다 어떤 펩타이드가 어떤 형태와 농도로 들어 있고, 최종 제형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피부의 필요한 위치까지 전달될 수 있느냐입니다. 2019년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피부 노화용 펩타이드의 임상연구 자체가 많지 않았고 연구 설계에도 상당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특정 성분의 효과와 자극 여부는 제품의 전체 처방과 개인 피부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펩타이드는 정확히 무엇일까?
펩타이드는 여러 개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작은 분자입니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구성 요소이므로 펩타이드를 흔히 ‘작은 단백질 조각’처럼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장품에 들어가는 모든 펩타이드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장품용 펩타이드는 연구되는 작용에 따라 신호 펩타이드(signal peptide), 운반 펩타이드(carrier peptide), 신경전달 관련 펩타이드, 효소 억제 관련 펩타이드 등으로 분류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화장품 펩타이드만 100종 이상을 확인했으며,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 생성과 관련된 신호부터 색소·항산화·효소 활성 등 매우 다양한 기능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품에 ‘펩타이드’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확한 기능을 알 수는 없습니다.
가장 익숙한 ‘팔미토일 펩타이드’는 무엇일까?
안티에이징 화장품 전성분에서 자주 만나는 계열입니다. 대표적으로 팔미토일 펜타펩타이드-4(Palmitoyl Pentapeptide-4) 등이 있습니다. 펩타이드에 지방산인 팔미트산을 결합한 형태로, 피부 노화 화장품에서 오랫동안 연구돼 왔습니다. 대표적인 임상시험에서는 35~55세 여성 93명을 대상으로 팔미토일 펜타펩타이드를 포함한 보습제와 그렇지 않은 보습제를 얼굴 양쪽에 12주 동안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펩타이드를 사용한 쪽에서 잔주름과 주름 지표가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개선됐습니다. 즉 펩타이드 화장품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특정 펩타이드를 특정 농도와 제형으로 시험한 결과를 모든 ‘펩타이드 크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구리 펩타이드는 왜 따로 강조할까?
‘블루 세럼’이나 구리 펩타이드 화장품에서 흔히 언급되는 것이 GHK-Cu입니다. GHK라는 세 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펩타이드가 구리 이온과 결합한 형태입니다. 조직 회복과 세포외기질 등에 관한 다양한 기초 연구 때문에 피부 화장품 원료로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알아둘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 GHK 및 GHK-Cu를 검토한 논문에서는 이 성분이 화장품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도 피부 투과성과 실제 주름 개선 효과 등에 관한 공개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구리가 결합된 펩타이드이니 일반 펩타이드보다 무조건 강력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보톡스 펩타이드’라는 표현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 표현도 화장품 광고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대표적으로 아세틸 헥사펩타이드-8(Acetyl Hexapeptide-8)이 있습니다. 신경전달 과정과 관련된 기전 때문에 이른바 ‘보톡스 유사 펩타이드’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보툴리눔 톡신 주사와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2025년 발표된 리뷰에서는 아세틸 헥사펩타이드-8이 주름과 탄력 등에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이는 연구가 있지만, 친수성과 비교적 큰 분자 크기 때문에 각질층을 통과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실제로 신경근접합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바르는 보톡스’처럼 시술과 직접 비교하는 표현은 실제 화장품의 작용을 과장해서 이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펩타이드에서 ‘피부 침투’가 중요한 이유
펩타이드 화장품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좋은 작용을 하는 물질이라도 화장품으로 발랐을 때 필요한 위치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면 시험관에서 관찰된 결과와 실제 피부 효과 사이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피부의 가장 바깥쪽 각질층(stratum corneum)은 외부 물질의 침입을 막는 강력한 장벽입니다. 특히 크고 친수성이 높은 분자는 피부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펩타이드 연구에서는 지방산을 결합하거나 다양한 전달 시스템을 사용하는 등 피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큰 분자의 피부 전달을 돕는 별도의 ‘피부 침투 펩타이드’까지 연구되고 있습니다. 결국 펩타이드 이름 하나만 보는 것보다 완제품의 제형까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9종 펩타이드가 3종 펩타이드보다 좋은걸까?
현재 근거만으로 그렇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펩타이드 종류가 많으면 서로 다른 기능을 목표로 제품을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개수를 늘렸다는 사실이 임상 효과의 크기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제품에는 잘 연구된 펩타이드 한 종류가 의미 있는 처방으로 들어 있고, 다른 제품에는 여러 펩타이드가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성분표만으로 각 성분의 정확한 함량이나 최종 제품에서의 안정성, 피부 전달 정도까지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12종 > 9종 > 5종’처럼 펩타이드 숫자를 화장품 성능의 순위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최신 연구에서도 ‘바르는 펩타이드’의 근거는 제한적
2026년 발표된 무작위대조시험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에서는 경구 및 국소 펩타이드 연구 19편, 총 1,341명을 분석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수분과 밝기, 주름 등 일부 피부 지표에서 개선이 나타났지만 국소 도포 펩타이드에 관한 질 높은 연구는 매우 적었습니다. 특히 주름 개선의 전체 효과 역시 경구 펩타이드 연구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으며, 바르는 펩타이드의 효과를 확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했습니다. 이는 펩타이드 화장품이 효과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장품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해 각각의 펩타이드를 충분히 비교한 사람 대상 임상시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펩타이드 화장품은 이렇게 골라보세요
- 앞면의 ‘멀티 펩타이드’라는 문구보다 전성분표에서 실제 펩타이드 이름을 확인하세요.
- 펩타이드 개수보다 제품이 주장하는 효과를 뒷받침하는 완제품 임상시험이 있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의미 있습니다.
- 주름 관리가 목적이라면 펩타이드 하나에 모든 역할을 맡기지 마세요. 자외선 차단과 충분한 보습이 기본이며, 다른 기능성 성분을 사용할 경우 자신의 피부 자극 정도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 '보톡스와 같은 효과’, ‘콜라겐을 즉시 채운다’처럼 화장품의 범위를 넘어서는 표현은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펩타이드 화장품은 숫자보다 ‘어떤 펩타이드인가’가 중요
멀티 펩타이드 화장품의 장점은 서로 다른 펩타이드를 하나의 제품에 조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종류가 많다는 것과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팔미토일 펩타이드처럼 사람 피부에서 임상시험이 이루어진 성분도 있고, 구리 펩타이드처럼 흥미로운 생물학적 가능성에 비해 화장품으로서의 임상자료가 더 필요한 성분도 있습니다. 앞으로 펩타이드 화장품을 볼 때는 앞면에 적힌 ‘9종’, ‘12종’이라는 숫자보다 정확히 어떤 펩타이드가 들어 있는지, 최종 제품에서 효과를 확인한 자료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세요. 펩타이드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근거 있는 성분을 피부에 적절하게 전달하는 처방입니다.